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리뷰 : 멀티버스의 맹목적 질주(Will) 속에서 피어난 다정한 스토아적 구원
세탁소와 국세청 사이 우리 모두의 권태롭고 위태로운 실존
우리의 삶은 어쩌면 무한한 가능성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하나의 버전을 연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이하 에에올)는 산더미 같은 세탁물과 까다로운 국세청 직원 디어드레(제이미 리 커티스 분)의 압박 그리고 서먹해진 딸 조이(스테파니 수 분)와의 갈등에 시달리는 에블린의 숨 막히는 일상에서 시작합니다.
50대의 중턱에 서서 지나온 삶의 수많은 만약에(What if)를 후회하는 시선으로 볼 때 이 영화의 혼란스러운 오프닝은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라 우리의 위태로운 실존에 대한 서늘한 경고장처럼 다가왔습니다.
다니엘스 영화 문법을 재발명한 듀오
다니엘 콴과 다니엘 셰이너트 일명 다니엘스(Daniels)로 불리는 이 두 감독은 뮤직비디오와 단편 영화를 통해 독창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해온 작가들입니다. 그들의 첫 장편 스위스 아미 맨(2016)은 시체가 주인공인 기괴한 어드벤처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에에올은 그들의 두 번째 장편이자 영화 역사상 가장 대담한 시도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멀티버스, 가족 드라마, 쿵푸 액션, SF, 코미디, 그리고 실존 철학을 한 영화에 모두 담아낸 이 작품은 2023년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등 7개 부문을 휩쓸며 영화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양자경의 인생작 그리고 모두의 부활
이 영화의 또 다른 놀라움은 캐스팅에 있습니다. 와호장룡, 게이샤의 추억등으로 사랑받았지만 한동안 기억 속에 잊혀가던 양자경(미셸 여)이 60세에 인생 최고의 연기를 선보입니다. 그녀는 이 작품으로 아시아계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영화사에 길이 남을 순간을 만들어냈습니다.
인디아나 존스와 구니스의 어린 스타였다가 영화계에서 사라졌던 키 호이 콴 역시 이 작품을 통해 30년 만에 화려하게 복귀하여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수상 소감은 영화제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영화 자체가 마치 영화 속 메시지처럼 잊혀진 가능성의 부활이라는 메타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세상에나, 모든 곳에, 한꺼번에" 폭주하는 자아의 도가니 (스포일러 주의)
평범함의 지옥 에블린의 일상
영화는 에블린의 좁은 세탁소 사무실에서 시작됩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영수증 곧 닥칠 국세청 감사, 노쇠한 아버지의 방문 준비 그리고 무엇보다 딸 조이와의 풀리지 않는 갈등 에블린의 일상은 평범하지만 동시에 숨이 막힙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영화 도입부의 미장센입니다. 좁은 세탁소 안에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며 카메라는 에블린의 분주한 움직임을 따라 정신없이 움직입니다. 이는 멀티버스 등장 이전에 이미 에블린의 삶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를 시각화한 탁월한 연출입니다.
남편 웨이먼드는 그녀에게 이혼 서류를 내밀려 하고 있고 보수적인 아버지는 동성애자인 손녀(조이)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에블린은 모든 사람의 기대와 요구 사이에서 자신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돌바닥에서 쿵푸 마스터까지 무한한 '나'를 횡단하다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콴 분)의 다른 우주 버전인 알파 웨이먼드에 의해 멀티버스의 존재를 알게 된 에블린은 다른 우주의 내가 가진 능력을 빌려오는 버스 줌(Verse-jumping)을 통해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기발한 시각 효과와 숨 막히는 쿵푸 액션을 통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의 '나'를 스크린 위에 쏟아냅니다. 화려한 액션 스타가 된 에블린, 오페라 가수 에블린, 요리사 에블린, 사인펜 손가락을 가진 에블린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돌멩이 에블린까지.
특히 두 개의 돌멩이가 절벽 위에서 자막으로 대화하는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입니다. 거대한 액션 영화 한가운데서 갑자기 모든 움직임이 멈추고 두 개의 돌멩이가 존재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장면은 다니엘스 감독의 천재성을 보여줍니다.
에브리씽 베이글 모든 것의 허무
하지만 모든 것을 경험하고(Everything), 모든 곳에 존재하며(Everywhere), 모든 순간을 살게 된(All At Once) 끝에 기다리는 것은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거대한 허무주의의 심연 에브리씽 베이글이었습니다.
이 베이글은 영화 속 빌런이지만 동시에 가장 깊은 철학적 상징입니다. 이는 모든 것을 흡수하는 블랙홀이자 무한한 가능성을 경험한 자가 도달하는 궁극의 허무입니다. 우주의 모든 가능성을 경험한 조이가 만들어낸 이 베이글은 너무 많은 선택지가 결국 의미의 부재로 이어진다는 현대인의 정신적 위기를 시각화합니다.
조이가 자신의 어머니를 멀티버스로 끌어들인 이유는 단순합니다. 자신처럼 모든 것의 의미 없음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함께 베이글에 뛰어들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모자 갈등이 아니라 절망에 빠진 한 영혼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끝나기를 바라는 비극적 호소입니다.
스테파니 수의 압도적 존재감
조이/조부 투파키 역의 스테파니 수는 이 영화로 단숨에 할리우드 최고의 신예 배우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녀가 연기한 조이는 평범한 레즈비언 여성이지만 동시에 모든 우주를 정복한 카오스의 화신이기도 합니다.
특히 의상 변화로 표현되는 조부 투파키의 다양한 모습은 시각적 즐거움 그 자체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의상부터 화려한 드레스, 야쿠자 스타일까지 매 장면마다 다른 페르소나를 보여주는 그녀의 연기는 압도적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녀가 마지막에 보여주는 무너지는 모습입니다. 모든 것을 경험한 자의 공허한 눈빛 더 이상 그 어떤 자극도 그녀를 살아있게 만들지 못한다는 절망 이 미묘한 감정의 결을 표현해내는 그녀의 연기력은 경이롭습니다.
철학적 시선으로 본 에에올
멀티버스의 비합리적 팽창 쇼펜하우어의 맹목적 생의 의지
영화가 보여주는 무한히 가지를 치며 팽창하는 멀티버스는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말한 맹목적 생의 의지(Wille zum Leben)의 완벽한 시각적 구현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욕망과 삶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과 고통의 수레바퀴로 보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끝없는 갈망에 시달리며 한 욕망이 충족되면 곧바로 새로운 욕망이 생겨납니다. 이 의지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무한한 가능성의 에블린들은 결국 각자의 우주에서 끝없는 갈증과 고통을 겪고 있으며 이는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의지가 만들어낸 아비규환의 축소판입니다. 가장 성공한 액션 스타 에블린조차도 행복하지 않으며 가장 부유한 에블린도 외로움을 느낍니다. 어떤 우주에서도 완전한 만족은 없습니다.
딸 조이의 폭주(조부 투파키) 역시 이 끝없는 존재의 맹목성 앞에서 느낀 거대한 실존적 허무의 발현입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경험했기에 더 이상 그 어떤 것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현대인이 직면한 정보 과잉, 선택지 과잉의 시대가 가져온 새로운 형태의 영적 위기입니다.
제발 다정해져라 멀티버스를 멈추게 한 스토아적 내면의 성채
거대한 베이글(허무) 앞에 모든 우주가 삼켜지려는 순간 극을 구원하는 것은 화려한 쿵푸 기술이 아니라 남편 웨이먼드의 투박하고 진심 어린 호소입니다. "제발 다정해져라. 특히 우리가 무엇이 일어나는지 모를 때(Be kind, especially when we don't know what's going on)."
이 한 문장은 이 영화 전체의 철학적 결론입니다. 웨이먼드의 다정함은 가혹한 운명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스토아적 내면의 성채(Inner Citadel)이자 고요한 이성입니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당신을 화나게 하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당신의 판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웨이먼드는 세상의 통제 불가능한 변수(Nature)에 분노로 맞서는 대신 오직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 즉 타인을 향한 다정함과 현재에 충실함을 선택합니다.
영화 속에서 웨이먼드는 가장 약해 보이는 인물입니다. 그는 이혼 서류를 들고 다니며 어색하게 웃고 사람들에게 사탕이나 작은 선물을 건네며 갈등을 피하려 합니다. 다른 우주의 강인한 알파 웨이먼드와 비교하면 한심해 보일 정도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우리는 깨닫습니다. 웨이먼드의 다정함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모든 우주를 정복한 조부 투파키도 무한한 능력을 가진 알파 에블린도 막지 못한 베이글의 허무를 평범한 세탁소 주인의 다정한 한마디가 멈추게 합니다.
이는 니체가 말한 약자의 도덕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강함은 외부의 폭력에 같은 폭력으로 응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평정과 다정함을 지키는 것에 있다는 스토아적 통찰입니다.
가장 실패한 에블린의 찬란한 아모르 파티
영화의 가장 깊은 통찰은 알파 웨이먼드의 대사에서 드러납니다. 당신이 이 모든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이유는 당신이 가장 실패한 버전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가능성에서 실패한 에블린만이 모든 우주의 능력에 접근할 수 있다는 이 설정은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디어드레의 세무 조사와 가족의 붕괴라는 가장 가혹한 운명(Nature)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기꺼이 그 실패한 현실을 끌어안는 에블린의 결단 이는 운명을 회피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스토아적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애)의 완성입니다.
니체는 운명을 사랑하라 그것이 인간의 위대함을 위한 나의 공식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에블린은 더 이상 다른 우주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세탁소 주인의 삶일지라도 그 안에서 딸 조이를 안아주고 현재의 남편 웨이먼드와 함께하겠다는 그녀의 선택은 타인의 시선(세인)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존엄을 지켜내는 처절한 투쟁이자 가장 아름다운 실존적 증명입니다.
동양 철학과의 만남
흥미롭게도 이 영화의 메시지는 서양 철학뿐 아니라 동양 사상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불교의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는 가르침처럼 깨달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줍니다.
에블린이 결국 깨달은 것은 모든 우주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의 가치였습니다. 이는 노자의 도는 자연을 따른다(道法自然)는 가르침과도 통합니다.
시각적 미학과 편집의 혁신
다니엘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영화 편집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평균 100분이 넘는 영화 속에 수천 컷이 빠르게 전환되며 동시에 여러 우주의 이야기가 병렬로 진행됩니다. 이 정신없는 편집은 멀티버스의 혼돈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동시에 관객에게 에블린의 정신적 과부하를 직접 체험하게 합니다.
시각효과 또한 놀랍습니다. 약 1,400만 달러라는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마블 영화에 버금가는 시각적 스펙터클을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버스 줌을 위해 이상한 행동을 하는 장면들 신발을 거꾸로 신기, 종이로 손가락 자르기, 반려동물에 키스하기등은 아이디어의 천재성을 보여줍니다.
음악 또한 영화의 정서를 풍부하게 만듭니다. 손 럭스(Son Lux)가 작곡한 OST는 멜랑콜리한 멜로디부터 강렬한 액션 음악 그리고 미츠키와 데이비드 번이 부른 엔딩 곡 This Is a Life까지 영화의 모든 정서를 완벽하게 담아냅니다.
결론 : 무한한 멀티버스 속에서 지금 당신의 다정함을 위하여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우리에게 가만히 묻습니다. 무한한 우주와 가능성 가운데 당신은 지금 왜 이곳에 있으며 누구를 위해 다정함을 베풀고 있느냐고 말이죠.
50대의 긴 여정을 지나오며 수많은 실패와 후회의 만약에를 가슴에 묻어둔 분들에게도 이 영화의 거친 에너지와 다정한 결말은 오래도록 묵직한 위로를 안겨줍니다.
오늘 밤만큼은 거대한 세상의 소음(세인)을 멈추고 여러분의 곁에 있는 소중한 이들에게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다정함의 주먹을 건네 보시길 바랍니다. 그 작은 선택이 무한한 멀티버스를 구원할 유일한 열쇠일지 모르니까요.
관람 포인트와 추천 대상
- SF/멀티버스 팬 : 멀티버스 영화의 새로운 정점을 만나고 싶은 분
- 가족 드라마 애호가 : 화려한 외피 속 진솔한 가족 이야기
- 양자경 팬 : 그녀의 인생 캐릭터를 만나는 기회
- 철학적 영화 선호 : 실존주의와 동양 사상의 만남
- 삶에 지친 모든 분 : 평범한 일상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위로
📌 관람 팁:
- 첫 관람에서는 화려한 액션과 시각효과를 즐기시고
- 두 번째 관람에서는 디테일과 복선을 찾아보시고
- 세 번째 관람에서는 철학적 메시지를 음미해 보세요
- 한 번으로는 절대 부족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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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다니엘스 감독의 스위스 아미 맨, 그리고 평행 우주를 다룬 코히런스, 가족 드라마와 SF를 결합한 인터스텔라, 그리고 평범한 일상의 의미를 다룬 소울 등을 함께 보시면 더욱 풍성한 감상이 가능합니다.
영화관을 나설 때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한 번 더 잡고 싶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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