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난처 리뷰 : 우리는 왜 고통받고 어떻게 견뎌내는가
쇼펜하우어의 욕망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수용이 교차하는 지점 우리는 왜 끊임없이 무언가를 원하고 마침내 그것을 얻어내고 나서도 또다시 알 수 없는 불안과 고통에 시달리는 것일까요? 최근 개봉하여 많은 이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는 영화 피난처(Shelter)에서 가장 압도적인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주인공이 마침내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물리적 안식처에 도달한 직후의 장면일 것입니다. 모든 외부의 위협을 차단할 수 있는 견고한 문을 걸어 잠그고 바깥의 소음이 완벽히 차단된 고요한 공간 그러나 카메라가 비추는 주인공의 얼굴에는 평온함 대신 형언할 수 없는 공허함과 새로운 형태의 신경증적 불안이 서려 있습니다. 두꺼운 벽 안에서도 인간은 왜 온전히 쉴 수 없는 것일까요? 영화 피난처는 단순한 재난이나 생존 스릴러의 문법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이 작품은 생존이라는 원초적 본능의 이면을 파고들며 인간 내면에 깊숙이 뿌리내린 욕망의 굴레와 그로 인한 고통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마주하고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묵직하고도 날카로운 철학적 질문을 관객의 가슴에 던집니다. 오늘의 포스팅에서는 숨 가쁘게 달려온 삶의 궤적 속에서 문득 삶의 진정한 의미를 묻게 되는 분들을 위해 이 영화를 두 명의 위대한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시선을 빌려 한층 더 깊이 있게 해부해 보려 합니다. 쇼펜하우어의 렌즈 : 결코 채워지지 않는 맹목적 생명 의지와 고통의 굴레 영화의 전반부를 지배하는 정서는 결핍과 투쟁입니다. 주인공이 겪는 가혹한 딜레마와 끝없이 이어지는 육체적, 정신적 시련은 단순히 그 시대적 배경이 암울하거나 운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이를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서늘한 철학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이 모든 비극과 투쟁의 근원은 바로 인간 본연에 내재된 맹목적 생명 의지(이성이나 뚜렷한 목적 없이 오로지 살고자 하고 더 나아지려 끊임없이 욕망하는 맹목적이고 끈질긴 충동)에 있습니다. 욕망의 진자 운동 그 지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