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인턴(The Intern)

이미지
  [영화 비평] 인턴(The Intern): 70세 인턴이 전하는 '경륜'의 가치와 세대 공감의 정석 경험은 결코 늙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새로움'만이 미덕으로 추앙받는 세상이다. 하지만 영화 <인턴>은 묻는다. 과연 속도가 전부일까? 낸시 마이어스 감독은 70세의 나이에 온라인 쇼핑몰 회사의 인턴으로 재취업한 '벤(로버트 드 니로)'을 통해, 우리가 잊고 지냈던 아날로그적 가치와 '경륜'의 힘을 증명한다. 30세의 젊은 여성 CEO '줄스(앤 해서웨이)'와 70세의 노신사 인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두 사람의 우정은 단순한 코미디를 넘어, 고령화 사회와 디지털 세대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따뜻한 해답을 제시한다. 본 글에서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진정한 멘토링의 의미와 세대 통합의 메시지를 분석해 본다. 벤 위태커: 꼰대가 아닌 '진짜 어른'의 품격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벤'은 은퇴한 전화번호부 회사 임원 출신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풍부한 경험을 무기로 내세우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손수건은 나를 위해 쓰는 게 아니라, 눈물을 흘리는 남을 위해 빌려주는 것"이라며 묵묵히 동료들을 챙긴다. 젊은 동료들이 연애 문제나 업무 실수로 당황할 때, 벤은 스마트폰 검색으로는 찾을 수 없는 삶의 지혜를 건넨다. 그는 지적(Pointing)하는 꼰대가 아니라, 지지(Support)하는 어른이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의 품격은, 권위주의에 빠지지 않고 존경받는 시니어의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한다. 이는 현대 사회가 간절히 필요로 하는 '어른의 부재'를 채워주는 힐링 포인트다. 줄스 오스틴: 성공 뒤에 숨겨진 불안한 청춘 앤 해서웨이가 분한 '줄스'는 창업 1년 반 만에 회사를 성공시킨 능력 있는 CEO다. 하지만 그녀는 늘 시간에 쫓기고, 가정과 일...

[영화 비평] 미키 17 (Mickey 17)

이미지
  [영화 비평] 미키 17 (Mickey 17): 봉준호가 던지는 죽음과 복제, 그리고 '나'라는 존재의 선박 <기생충> 이후 7년, 봉준호가 돌아왔다 전 세계가 기다려온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칸과 오스카를 제패한 거장이 선택한 차기작은 놀랍게도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다. 하지만 봉준호의 우주는 <스타워즈>의 영웅담과는 거리가 멀다.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얼음 행성 개척을 위해 소모품처럼 쓰이고 버려지는 복제인간 '익스펜더블(Expendable)'의 이야기를 다룬다. 로버트 패틴슨의 1인 다역 연기와 봉준호 특유의 디테일이 만난 이 작품은, 단순한 SF를 넘어 인간 존엄성에 대한 서늘한 질문을 던진다. 설정의 미학: 죽어야만 다시 사는 남자, 미키 주인공 '미키'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다 죽으면, 기억을 전송받은 새로운 몸으로 다시 깨어나는 복제인간이다. 미키 1호, 미키 2호... 그렇게 죽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해 어느덧 17번째 미키가 되었다. 영화는 '테세우스의 배'라는 철학적 난제를 건드린다. 배의 부품을 모두 교체했다면 그 배는 원래의 배와 같은 배인가? 기억은 그대로지만 육체는 매번 새것으로 교체되는 미키 17은 과연 미키 1과 같은 존재인가? 봉준호 감독은 이 무거운 주제를 특유의 블랙 코미디로 풀어낸다. 자신의 죽음을 업무 일지 쓰듯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미키의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품처럼 소모되는 현대 노동자의 비애를 풍자하는 듯하다. 봉테일의 귀환: SF에서도 빛나는 현실 풍자 <설국열차>에서 기차라는 한정된 공간을 계급 사회의 축소판으로 만들었듯, <미키 17>의 우주 기지 역시 철저한 계급 사회다. 죽음을 불사하는 험한 일은 복제인간에게 떠넘기고, 안전한 곳에서 이익만을 챙기는 기득권층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특히 봉준호 감독은 하이...

[영화 비평] 플로렌스(Florence)

이미지
  [영화 비평] 플로렌스(Florence): 세상에서 가장 '못 부르는' 소프라노가 전하는 우아한 불협화음 음치, 카네기 홀에 서다? "사람들은 내가 노래를 못한다고 할 수는 있어도, 내가 노래를 안 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 역사상 가장 노래를 못 부르는 소프라노, 하지만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했던 여인 '플로렌스'. 영화 <플로렌스>는 1940년대 뉴욕 사교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다. 연기의 신(God) 메릴 스트립과 로맨틱 코미디의 제왕 휴 그랜트가 만난 이 작품은, 겉보기엔 우스꽝스러운 소동극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꿈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헌신적인 사랑이 흐르고 있다. 재능은 없지만 돈과 열정은 넘쳤던 그녀가 어떻게 음악의 전당인 '카네기 홀' 전석 매진을 기록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우리에게 어떤 감동을 주는지 분석해 본다. 메릴 스트립: 노래를 '잘' 못 부르는 연기의 경지 메릴 스트립은 실제로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에서 뛰어난 가창력을 뽐낸 바 있는 배우다. 그런 그녀가 박자와 음정을 완전히 무시하며 '진지하게 못 부르는' 연기를 펼치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단순히 웃기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호흡이 달려서 헐떡이거나 고음에서 삑사리가 날 때마다 미세하게 떨리는 눈동자와 표정은 압권이다. 관객은 처음에는 그녀의 끔찍한 노래 실력에 폭소를 터뜨리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우스꽝스러운 몸짓 뒤에 숨겨진 병약한 육체와 순수한 영혼을 발견하게 된다. 메릴 스트립은 '조롱거리'가 될 수 있는 캐릭터를 '사랑스러운 몽상가'로 완벽하게 변모시켰다. 휴 그랜트: 사랑인가, 연민인가, 혹은 비즈니스인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플로렌스의 남편이자 매니저인 '베이필드(휴 그랜트)'다. 그는 아내가 상처받지 않도록 혹평이 담긴 신문을...

[영화 비평] 하트맨(Heartman)

이미지
  [영화 비평] 하트맨(Heartman): 심장이 뛰면 죽는 남자의 아이러니와 박정민표 '음소거' 액션 가장 뜨거운 순간에 가장 차가워야 하는 남자 2026년 1월 극장가를 찾아온 영화 하트맨은 로그라인(Logline)부터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 달려야 하지만 심박수가 올라가면 죽는다. 이 모순적인 설정은 기존의 액션 영화들이 추구해온 더 빠르고 더 강렬하게라는 공식을 정면으로 비튼다. 주인공은 가장 급박한 상황에서 가장 침착해야만 한다. 믿고 보는 배우 박정민이 선택한 이 독특한 블랙 코미디는 단순한 오락 영화를 넘어 현대인이 겪는 감정 통제의 스트레스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본 글에서는 이 영화가 서스펜스를 구축하는 방식과 박정민이라는 배우가 보여준 절제의 미학을 심층 분석한다. 설정의 미학: 스피드의 생체학적 변주 영화의 핵심 기믹(Gimmick)인 생체 폭탄 혹은 심박수 제한 설정은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스피드나 제이슨 스타뎀의 아드레날린 24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하트맨은 이를 정반대로 비틀었다. 아드레날린이 필요한 게 아니라 억제해야 하는 것이다. 이 설정은 영화 내내 관객에게 독특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주인공이 전력 질주를 하거나 격투를 벌이는 일반적인 클라이맥스 장면에서조차 그는 심호흡을 하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진정시켜야 한다. 이러한 강(액션)과 약(진정)의 부조화는 실소(失笑)를 자아내는 동시에 주인공의 처절함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감독은 심박수 모니터의 숫자를 시각적으로 노출시키며 관객의 심박수까지 주인공과 동기화시키는 영리한 연출을 선보인다. 박정민의 연기: 무표정 속에 담긴 화산 같은 감정 배우 박정민은 동주, 그것만이 내 세상 등에서 보여주었듯 캐릭터의 디테일을 구축하는 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배우다. 이번 하트맨에서 그는 감정을 거세해야만 사는 남자를 연기하며 또 한 번의 파격을 시도했다. 딸이 납치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무표정을 유지해야 하는 그의 얼굴...

[영화 리뷰] 굿 포츈(Good Fortune)

이미지
  [영화 리뷰] 굿 포츈(Good Fortune): '존 윅'이 날개 없는 천사가 되어 가르쳐준 행복의 역설 키아누 리브스, 총 대신 날개를 달다? 액션 누아르의 대명사 '존 윅'은 잊어라. 배우 키아누 리브스가 영화 <굿 포츈>을 통해 엉뚱하고 어설픈 천사 '가브리엘'로 돌아왔다. 코미디언이자 감독인 아지즈 안사리의 연출작인 이 영화는, 화려한 캐스팅(키아누 리브스, 세스 로건, 아지즈 안사리)만으로도 이목을 집중시킨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한 슬랩스틱 코미디가 아니다. "돈이 있으면 행복할까?"라는 인류 최대의 난제를 '영혼 체인지'와 '천사의 개입'이라는 판타지적 설정으로 풀어낸 유쾌한 사회 풍자극이다. 본 글에서는 긱 워커(Gig Worker, 단기 계약직)의 현실을 꼬집는 감독의 시선과, 키아누 리브스의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분석해 본다. 캐릭터의 반전: 수호천사가 된 액션 스타 대중에게 키아누 리브스는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고독한 킬러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굿 포츈>에서 그가 연기한 천사 '가브리엘'은 선한 의도는 가득하지만 일 처리는 엉망인 허당 캐릭터다. 가난한 주인공에게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교훈을 주려다 일을 꼬이게 만드는 그의 모습은, 전작 <존 윅>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큰 웃음을 준다. 특히 수영장에서 날개(CG)를 펼치려다 실패하거나, 인간 세상의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당황하는 그의 표정 연기는 '키아누 리브스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장르를 불문하고 관객을 무장해제시키는 배우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풍자의 핵심: 긱 이코노미(Gig Economy)와 빈부격차 영화의 갈등 구조는 명확하다. 하루벌이 인생을 사는 긱 워커(아지즈 안사리)와, 가진 건 돈밖에 없는 억만장자(세스 로건). 천사 가브리엘은 이 둘의 삶을 바꿔...

[영화 비평] 라디오 스타(2006)

이미지
  [영화 비평] 라디오 스타(2006): "별은 혼자 빛나지 않는다" 안성기가 남긴 가장 따뜻한 위로 비와 당신, 그리고 두 남자의 이야기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박중훈의 '비와 당신'. 이 노래가 수록된 영화 <라디오 스타>는 이준익 감독이 만든 가장 소박하지만, 가장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1988년 가수왕 출신이지만 지금은 철없는 사고뭉치로 전락한 록스타 '최곤(박중훈)'과, 그의 곁을 20년째 묵묵히 지키는 매니저 '박민수(안성기)'. 강원도 영월이라는 한적한 시골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들의 이야기는, 화려한 성공 신화가 아닌 '실패한 사람들의 재기'를 다루기에 더 큰 울림을 준다. 본 글에서는 故 안성기 배우가 연기한 '박민수'라는 캐릭터를 통해, 진정한 어른의 모습과 관계의 미학을 되짚어 본다. 13년 만의 재회: <투캅스> 콤비의 완벽한 앙상블 이 영화가 개봉 당시 화제를 모았던 이유는 1993년 <투캅스>로 한국 영화계를 휩쓸었던 안성기, 박중훈 콤비가 13년 만에 뭉쳤기 때문이다. <투캅스>에서 서로 속고 속이는 파트너였다면, <라디오 스타>에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부 같은 관계(매니저와 가수)로 돌아왔다. 박중훈이 여전히 철없고 자존심만 센 '아이' 같은 모습을 연기한다면, 안성기는 그런 그를 묵묵히 받아주고 뒷수습하는 '어머니'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김밥 한 줄을 먹더라도 최곤을 먼저 챙기고, 방송국 국장에게 고개를 숙이는 안성기의 모습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 그의 인품이 투영된 듯 자연스럽다. 두 배우의 깊어진 주름만큼이나 깊어진 호흡은, 이 영화를 단순한 코미디가 아닌 휴먼 드라마의 걸작으로 만들었다. 안성기의 명대사: "별은 혼자서 빛나는 게 아니야" 영화 후반부, 최곤의 재기를 위해 자신의 존재가 걸림돌이...

[영화 비평]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이미지
  [영화 비평]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기억을 잃는 소녀와 기록을 지키는 소년의 역설 뻔한 최루성 멜로? 기억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질문 제목만 보면 흔한 일본식 라이트 노벨 원작의 로맨스 영화처럼 보인다. '자고 일어나면 기억이 리셋되는 여자 주인공'이라는 설정 역시 <첫 키스만 50번째>나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통해 수없이 반복된 클리셰다. 하지만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가 한국 관객들에게 이례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이유는, 이 익숙한 소재를 다루는 태도에 있다. 영화는 단순히 "기억을 잃어서 슬프다"는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남는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본 글에서는 이 작품이 어떻게 신파의 함정을 넘어 관객에게 묵직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지, 그 서사적 장치와 영상미를 분석한다. 클리셰의 전복: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다루는 방식 주인공 마오리(후쿠모토 리코)는 자고 일어나면 전날의 기억을 잃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그녀에게 삶은 매일 아침 끊어지는 필름과 같다. 이를 이어 붙이는 유일한 매개체는 매일 밤 기록하는 '일기장'이다. 여기서 남자 주인공 토루(미치에다 슌스케)의 역할이 빛난다. 그는 마오리의 기억이 유지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녀의 일기장을 행복한 기록들로 채워주기 위해 헌신한다. 보통의 로맨스 영화가 '기억을 되찾는 기적'에 집착한다면, 이 영화는 **'기억되지 않아도 존재하는 사랑'**에 집중한다. "내일의 너를 속이는 거야"라는 토루의 대사는 이 사랑이 비극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암시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순간의 행복을 더욱 절박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반전의 미학: 제목이 품은 진짜 의미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중반부,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