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라라랜드(La La Land) : 꿈꾸는 바보들을 위한 찬가 그리고 가장 현실적인 마법

라라랜드 포스터


마법 같은 순간은 영원하지 않기에 아름답다

영화 라라랜드는 시작부터 관객을 압도한다. 꽉 막힌 LA의 고속도로 위 짜증 나는 경적 소리가 경쾌한 재즈 리듬으로 바뀌며 수백 명의 사람들이 춤을 추는 오프닝 시퀀스는 선언과도 같다. 지금부터 당신에게 마법을 보여주겠다고.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사라져가는 고전 뮤지컬 영화의 낭만을 21세기에 완벽하게 부활시켰다.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배우 지망생 미아(엠마 스톤). 꿈을 좇는 두 청춘의 사랑 이야기는 달콤한 사탕 같지만 그 속맛은 의외로 쌉싸름하다. 본 글에서는 이 영화가 어떻게 환상적인 영상미 속에 지독히도 현실적인 청춘의 비망록을 숨겨놓았는지 분석한다.

색채의 향연 : 원색으로 칠해진 꿈의 도시

라라랜드는 보는 내내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원색을 사용한다. 미아의 노란 원피스, 파란 밤하늘, 보랏빛 노을은 마치 테크니컬러 시절의 고전 영화를 보는 듯한 향수를 자극한다. 이 화려한 색감은 두 주인공이 꾸는 꿈을 시각화한 장치다. 현실은 월세 낼 돈이 없어 허덕이고 오디션에서 무시당하기 일쑤지만, 그들의 내면만큼은 이토록 총천연색으로 빛나고 있음을 감독은 영상으로 웅변한다.

주목할 점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색채가 변한다는 것이다. 사랑이 무르익는 전반부에서 화면은 노랑, 파랑, 보라 같은 강렬한 원색으로 가득하지만 현실의 무게가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기 시작하는 후반부로 갈수록 색은 점차 채도를 잃고 회색빛 톤에 가까워진다. 셔젤 감독은 대사 한 마디 없이도 색채의 온도만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관객에게 직감하게 만든다.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두 사람이 왈츠를 추며 은하수 속으로 날아오르는 장면은 사랑에 빠진 순간 세상이 얼마나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적 체험의 극치다.

꿈의 대가(Cost) : 사랑과 성공은 함께 갈 수 없는가

이 영화가 단순한 판타지 로맨스와 궤를 달리하는 지점은 바로 중반 이후의 전개다. 세바스찬은 정통 재즈를 지키고 싶지만 생계를 위해 퓨전 밴드에 들어가고 미아는 1인극에 실패하고 고향으로 낙향한다. 영화는 잔인하게 묻는다. 꿈을 이루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가?

두 사람은 서로의 꿈을 가장 뜨겁게 응원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각자의 꿈에 가까워질수록 둘 사이의 거리는 멀어진다. 이 갈등이 가슴 아픈 이유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 때문이다. 악역이 없다. 배신도 없다. 두 사람 모두 옳고, 두 사람 모두 최선을 다한다. 그럼에도 어긋나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낭만적인 음악 뒤에 조용히 숨겨놓았다. 셔젤 감독은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타협과 고독, 그리고 소중한 것을 놓치는 순간의 아픔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이별은 악역 없이도 슬프고 처절하다.

만약에(What If)의 미학 : 가장 완벽했던 10분의 엔딩

라라랜드의 백미는 단연 마지막 10분의 회상 몽타주다. 5년 후 성공한 배우가 된 미아가 우연히 들른 재즈 바에서 세바스찬과 마주친 순간 영화는 만약 그때 우리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이라는 가정하에 완벽하게 행복한 또 다른 우주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그 환상 속에서 두 사람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늙어간다.

이 몽타주가 잔인한 것은 그 세계가 불가능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조금만 더 서로를 붙잡았더라면 충분히 가능했을 미래를 영화는 가장 아름다운 영상으로 보여준 뒤 빼앗는다. 음악이 멈추는 순간 그들은 다시 각자의 현실로 돌아온다. 서로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마지막 눈빛 교환은 우리는 함께할 수 없었지만 서로의 꿈을 완성해 주었다는 무언의 작별 인사다.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이 이 짧은 순간에 담아낸 감정의 밀도는 어떤 장황한 대사보다 강렬하다. 이 씁쓸한 엔딩 덕분에 라라랜드는 해피엔딩보다 더 긴 여운을 남기는 명작이 되었다.

흘러간 시간과 꿈꾸는 바보들을 위하여

영화의 주제곡 Audition의 가사처럼 세상은 몽상가들을 비웃을지 모른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그 바보 같은 열정이 세상을 다채롭게 만든다고 위로한다. 이 영화가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이유는 화려한 뮤지컬 넘버 때문만이 아니다. 누구나 한 번쯤 품었다가 놓아버린 꿈 그리고 그 꿈과 함께했던 사람에 대한 기억을 이토록 아름답게 소환해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영화처럼 늘 춤추고 노래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를 보는 2시간 동안 우리는 모두 꿈꾸는 바보가 될 수 있다. 현실에 치여 낭만을 잃어버린 당신에게 이 보랏빛 마법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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