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 어더 랜드 리뷰 : 사라지는 터전에서 피어나는 쇼펜하우어적 연민과 스토아적 저항

                영화 《노 어더 랜드》 리뷰 썸네일. 팔레스타인 마사페르 야타 지역의 파괴된 폐허 위에서 기록을 이어가는 바셀과 유발, 그리고 사라진 터전의 기억을 상징하는 홀로그램이 담긴 다큐멘터리 이미지.


타인의 고통을 목격하는 가장 고통스럽고도 필연적인 시선

세계 곳곳에서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지만 카메라가 비추지 않는 곳의 진실은 종종 외면받곤 합니다. 다큐멘터리 노 어더 랜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가장 치열한 현장 중 하나인 마사페르 야타 지역의 10년에 걸친 파괴와 저항의 기록입니다. 팔레스타인 활동가 바셀 아드라와 이스라엘 저널리스트 유발 아브라함이 공동 연출한 이 작품은 화려한 영상미나 서사 대신 집이 무너지고 삶의 터전이 사라지는 순간들을 투박하지만 정직한 카메라로 포착해 냅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정치적 고발을 넘어 가혹한 운명 앞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저항과 국경을 넘은 연대를 다룬 작품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뉴스로만 접하던 분쟁 지역의 현실이 완전히 다른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저녁 뉴스에서 중동 분쟁 지역에서 또 주거지가 철거되었습니다라는 앵커의 멘트를 들을 때 솔직히 저는 채널을 돌리곤 했습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 너무 먼 곳의 비극. 하지만 노 어더 랜드의 카메라가 잡아낸 장면 하나가 저의 무관심을 깨뜨렸습니다. 불도저가 집을 밀어버리는 순간 집 안에서 아이의 장난감이 굴러 나오는 장면. 그 장난감은 제 손자가 가지고 노는 것과 똑같은 플라스틱 자동차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 무너지는 집 안에도 제 손자와 같은 아이가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멀리 있던 비극이 플라스틱 자동차 하나로 바로 옆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무너지는 지붕 아래에서 피어난 기묘한 연대

영화의 중심에는 두 명의 공동 연출자가 있습니다. 마사페르 야타에서 나고 자라며 평생 집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해 온 팔레스타인 청년 바셀 그리고 그의 투쟁을 취재하러 왔다가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고 카메라를 든 이스라엘 저널리스트 유발. 이들은 이스라엘 군대의 불도저 앞에서 그리고 철거를 막으려는 주민들의 절규 속에서 함께 카메라를 지킵니다.

이 연대가 특별한 이유는 두 사람이 적대적 관계에 놓인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셀에게 유발은 자신의 집을 부수는 나라의 국민이고 유발에게 바셀은 자국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교육받아 온 대상입니다. 하지만 카메라라는 매개체를 사이에 두고 이 두 사람은 국적이 아닌 인간으로서 서로를 마주합니다. 팔레스타인 다큐멘터리, 노 어더 랜드 결말 해석,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 영화에 관심 있는 관객이라면 이 연대의 과정이 어떤 정치적 논쟁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은퇴 후 저는 뉴스를 볼 때 한쪽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판단하는 습관이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바셀과 유발이 보여주는 것은 진실은 어느 한쪽의 독점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적이라고 규정된 사람의 눈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바라볼 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진실이 드러납니다. 이 다큐멘터리가 정치적 편향에 빠지지 않는 이유는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기 때문입니다.

맹목적 권력의 폭압을 무너뜨리는 쇼펜하우어적 연민(Mitleid)의 태동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과 폭력성을 맹목적 생의 의지라고 칭했습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터전을 파괴하고 삶을 짓밟는 행위는 바로 이 맹목적 의지의 가장 잔인한 발현입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이 고통스러운 세계에서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도덕적 원리로 연민을 꼽았습니다. 유발이 이스라엘인이라는 기득권을 버리고 바셀과 함께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고통을 기록하는 행위는 타인의 고통을 나의 것처럼 느끼는 쇼펜하우어적 연민의 결정적 순간입니다.

저도 작은 규모이지만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동네에 독거노인분이 계셨는데 재개발로 인해 강제로 이주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법적으로 정당한 절차니까라고 생각하며 무관심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르신이 40년간 살아온 집 앞에서 울고 계시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순간 법적 정당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차가운 논리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물론 마사페르 야타의 상황과 비교할 수 없는 작은 사례이지만 타인의 터전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의 감정은 규모와 상관없이 동일합니다. 이기적 자아의 벽을 허물고 고통에 동참하는 이 연민이야말로 맹목적인 폭압에 균열을 내는 가장 강력한 도덕적 저항입니다.

사라지는 운명을 긍정하며 내면의 성채를 지키는 스토아적 저항 

주거지 철거와 불도저는 마사페르 야타 주민들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가혹한 운명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절망하거나 항복하지 않습니다. 주민들은 무너진 집터 위에 다시 텐트를 치고 카메라로 끊임없이 그 순간을 기록하며 저항합니다. 스토아 철학의 관점에서 이들의 저항은 가혹한 운명을 도망치지 않고 기꺼이 끌어안으면서도 동시에 이성적인 판단과 저항의 의지라는 자신들의 내면의 성채를 끝까지 지켜내는 숭고한 행위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피해자로 남겨두지 않고 끝까지 기록하고 증언하는 주체로서 운명에 맞섭니다.

앞서 리뷰했던 극장의 시간들과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가 사라지는 극장을 기록하는 행위의 숭고함을 다뤘다면 노 어더 랜드는 사라지는 삶의 터전 자체를 기록하는 행위의 절박함을 다룹니다. 극장이 사라지는 것도 가슴 아프지만 사람이 사는 집이 사라지는 것은 차원이 다른 비극입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기록이라는 행위가 소멸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저항이라는 본질은 같습니다.

결론 : 또 다른 땅은 없다 목격하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마지막 희망

노 어더 랜드는 단순한 뉴스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여전히 진행 중인 거대한 실존적 비극의 목격담입니다. 영화의 제목은 우리에게는 이 땅 외에 다른 땅은 없다는 주민들의 절규를 담고 있습니다. 쇼펜하우어의 연민과 스토아적 저항이 만나는 이 지점에서 영화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이 고통스러운 진실 앞에서 어떤 시선을 보낼 것인가? 오늘 여러분의 평온한 하루가 누군가의 사라지는 터전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닌지 조용히 성찰해 보는 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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