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크라임 101 리뷰 : 101번 국도를 질주하는 쇼펜하우어적 욕망과 스토아적 원칙의 충돌

영화 크라임 101 긴장감 넘치는 범죄 스릴러

돈 윈슬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크리스 헴스워스(절도범 데이비스)와 마크 러팔로(형사 루)의 연기 격돌만으로도 심장을 뛰게 합니다

로스앤젤레스의 101번 국도는 화려한 도시의 욕망이 가장 빠르게 혈관을 타고 흐르는 대동맥과도 같습니다. 영화 크라임 101은 바로 이 국도를 무대로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전설적인 보석 절도범 데이비스(크리스 헴스워스)와 그를 잡기 위해 모든 것을 건 형사 루(마크 러팔로)의 숨 막히는 추격전을 그립니다. 단순한 범죄 액션을 넘어 각자의 엄격한 룰을 가진 두 남자가 거대한 시스템의 혼돈 속에서 어떻게 충돌하고 또 서로를 투영하는지를 묵직한 하드보일드 감성으로 담아낸 수작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직장 생활 시절 저와 라이벌 관계였던 동기가 떠올랐습니다. 같은 해에 입사해서 매 승진 심사마다 치열하게 경쟁했던 사이. 방법론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는 인맥과 정치를 중시했고 저는 실적과 원칙을 고집했습니다.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묘하게 존중하는 관계. 데이비스와 루가 범죄자와 형사라는 적대적 위치에 있으면서도 서로의 원칙에 대한 기묘한 경의를 품고 있는 것처럼 저와 그 동기도 방법은 달랐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본질에서는 닮아 있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 동기와 가끔 소주를 마시며 옛날이야기를 합니다. 적이었던 사람이 가장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되는 역설. 크라임 101이 그려내는 것이 바로 그 역설입니다.

완벽이 무너지는 순간 진짜 본성이 드러난다

데이비스는 폭력을 배제하고 치밀한 계획하에 타깃을 터는 이른바 예술적 범죄를 추구합니다. 반면 형사 루는 이혼의 아픔 등 개인적인 삶이 무너져가는 와중에도 오직 이 사건에만 병적으로 집착합니다. 영화는 데이비스가 마지막 한탕을 위해 보험중개인 샤론(할리 베리)과 위험한 공조를 시작하면서 변곡점을 맞습니다.

크리스 헴스워스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변신이 인상적입니다. 토르의 우렁찬 근육질 영웅이 아니라 냉철하고 계산적이며 때로는 취약한 범죄자. 그의 데이비스는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두뇌와 원칙으로 승부하는 캐릭터입니다. 마크 러팔로의 루와 맞붙는 장면들에서 두 배우는 대사보다 눈빛으로 더 많은 것을 주고받습니다. 크리스 헴스워스 마크 러팔로 주연의 범죄 스릴러, 돈 윈슬로 원작 영화, LA 배경 하드보일드 영화에 관심 있는 관객이라면 두 배우의 연기 격돌이 만들어내는 팽팽한 긴장감에 숨이 막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통제 불가능한 변수들과 잔혹한 경쟁자들이 끼어들며 데이비스의 완벽했던 계획은 금이 가기 시작하고 두 남자는 자신들이 세워둔 원칙과 거대한 탐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게 됩니다. 완벽하게 통제된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 비로소 인간의 진짜 본성이 드러난다는 것. 이것은 범죄 영화의 문법이면서 동시에 인생의 진리이기도 합니다.

보석과 돈 벗어날 수 없는 맹목적 생의 의지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과 욕망의 수레바퀴 즉 맹목적 생의 의지 속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극 중 화려한 101번 국도와 수백억 원의 보석 그리고 이를 탐하며 서로를 물어뜯는 뒷골목의 군상들은 바로 이 맹목적 의지가 만들어낸 아비규환의 축소판입니다.

직장 생활 중 저도 이 수레바퀴 위에 올라타 있었습니다. 과장이 되면 부장이 되고 싶었고 부장이 되면 임원이 되고 싶었습니다. 목표를 달성하면 잠시 기쁘다가 곧 더 큰 목표가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은퇴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수레바퀴에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데이비스가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한탕을 노리는 행위 역시 이 지독한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 완전한 해방을 얻고자 하는 실존적 발버둥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마지막 한 번만이라는 말은 대개 거짓말입니다. 욕망의 수레바퀴는 한 번 더 돌려달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니까요.

혼돈의 국도 위에서 내면의 성채를 지키려는 스토아적 고집 

탐욕이 지배하는 이 무법 지대에서 데이비스와 루를 다른 범죄물 캐릭터들과 다르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들의 원칙입니다. 절대 폭력을 쓰지 않는 데이비스의 룰이나 모든 삶이 무너져도 형사로서의 본분에 집착하는 루의 고집은 스토아학파가 강조하는 내면의 성채에 다다릅니다. 세상이 어떤 통제 불가능한 변수를 던지더라도 두 남자는 각자의 이성적 통제력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 칩니다.

은퇴 후 저도 나름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기, 하루에 한 편의 글을 쓰기, 남의 험담을 하지 않기. 사소한 원칙이지만 이것이 제 하루를 지탱하는 내면의 성채입니다. 데이비스의 폭력은 쓰지 않는다는 룰이 범죄자라는 혼돈 속에서도 그를 인간으로 남게 해주는 것처럼 우리 각자의 작은 원칙이 삶의 혼돈 속에서 우리를 지켜줍니다. 이들의 추격전은 선과 악의 대결이라기보다 가혹한 운명 속에서도 자신만의 존엄을 지키려 애쓰는 두 스토아적 전사들의 처절한 투쟁을 보여줍니다..

결론 : 우리 각자의 101번 국도 위에는 무엇이 있는가

크라임 101의 짜릿한 카체이싱과 총격전이 끝난 뒤 스크린에 남는 것은 욕망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허탈하게 서 있는 인간의 뒷모습입니다. 50대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저의 눈에 이 영화의 101번 국도는 마치 끝없이 무언가를 쫓으며 달려온 우리네 인생길과 겹쳐 보였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쫓아 혹은 무엇에 쫓겨 삶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계십니까? 오늘 밤만큼은 브레이크를 밟고 그 맹목적인 질주 속에서 나만의 내면의 성채는 무사한지 가만히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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