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악도 리뷰 : 고립된 마을을 잠식한 맹목적 믿음과 광기에 맞서는 스토아적 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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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끔찍한 공포는 귀신이 아니라 인간의 맹목적인 믿음이다

곡성과 사바하의 계보를 잇는 채기준 감독의 한국형 오컬트 스릴러 삼악도는 단순히 귀신이나 악령의 1차원적인 공포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영화는 일제강점기 이후 자취를 감춘 줄 알았던 사이비 종교가 어느 외딴 마을에 끔찍한 형태로 봉인되어 이어져 오고 있었다는 설정에서 출발합니다. 음산한 미장센과 숨 막히는 서스펜스 이면에는 절대적인 구원을 갈망하는 인간의 나약함이 어떻게 광기로 변질되는지 그리고 그 거대한 집단적 광기 속에서 개인의 이성은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서늘한 철학적 질문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수십 년 전 고향 마을에서 겪었던 기묘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마을 어귀에 오래된 당산나무가 있었는데 해마다 정월이면 동네 어른들이 나무 앞에 모여 제를 올렸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것이 그저 전통 행사라고 생각했지만 한번은 제사를 빠뜨린 해에 마을에 안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나자 어른들이 나무 신이 노했다며 공포에 떠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사람을 지탱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성을 잠식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삼악도는 바로 그 경계의 순간 믿음이 광기로 넘어가는 지점을 포착한 영화입니다.

파헤칠수록 조여오는 기묘한 마을의 실체 

탐사보도 전문 PD 채소연(조윤서)과 일본인 기자 마츠다 다이키(곽시양)는 사이비 종교 삼악도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낯선 마을에 발을 들입니다. 겉보기엔 평범해 보였던 마을 주민들은 어딘가 서늘하고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취재가 깊어질수록 소연 일행은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하고 섬뜩한 맹신으로 통제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조윤서의 연기가 이 영화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줍니다. 그녀가 연기하는 채소연은 공포 영화에서 흔히 보는 비명만 지르는 여성 캐릭터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고 진실을 밝히겠다는 직업적 사명감으로 광기의 한복판을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은 이 영화가 단순한 공포물이 아닌 인간 드라마임을 증명합니다. 한국 오컬트 스릴러, 사이비 종교 영화, 곡성 류의 공포 영화에 관심 있는 관객이라면 조윤서와 곽시양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의 밀도에 압도당하게 될 것입니다.

종교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기괴한 의식과 이방인을 향한 마을 사람들의 적대감은 점차 실체 있는 공포로 변모하여 주인공들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옵니다.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마을 주민들이 악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선량한 사람들입니다. 다만 두려움에 눈이 멀어 맹신이라는 유일한 구명줄에 매달리고 있을 뿐입니다. 악인이 아닌 선량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공포. 그것이 이 영화의 가장 서늘한 지점입니다.

구원을 갈망하는 맹목적 생의 의지가 낳은 참극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끝없는 욕망 즉 맹목적 생의 의지의 노예라고 보았습니다. 삼악도의 마을 주민들이 비이성적인 사이비 종교에 그토록 처절하게 매달리는 이유 역시 현실의 고통과 불안 속에서 어떻게든 구원받고자 하는 이 맹목적 의지의 극단적인 발현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현대 사회의 수많은 삼악도를 떠올렸습니다. SNS에서 퍼지는 근거 없는 건강 정보에 맹목적으로 빠져드는 사람들 특정 유튜버의 말을 복음처럼 받아들이는 현상 확증 편향에 갇혀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적으로 규정하는 태도. 형태만 바뀌었을 뿐 맹목적 믿음이 이성을 잠식하는 구조는 영화 속 마을과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는 신이라는 허상을 빌려 타인을 배척하고 자신마저 파멸로 몰고 가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이성을 상실한 맹목적 의지가 얼마나 잔혹한 괴물로 변할 수 있는지를 소름 끼치게 증명합니다.

고립된 광기 속에서 지켜내야 할 스토아적 내면의 성채 

마을 전체가 광기에 휩싸인 상황은 소연과 마츠다가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끔찍한 외부의 운명입니다. 스토아 철학의 관점에서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도망치는 발걸음이 아니라 비합리적인 공포에 먹히지 않는 단단한 내면의 성채입니다. 턱밑까지 다가온 위협과 회유 앞에서도 마을의 비정상적인 규칙에 동화되지 않고 진실을 밝히겠다는 이성적 판단과 직업적 사명을 끝까지 붙잡는 소연의 사투는 눈물겹습니다.

은퇴 후 저도 내면의 성채가 필요한 순간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주변에서 이 나이에 블로그는 왜 하느냐, 조용히 쉬는 게 낫지 않느냐라는 말들이 마치 삼악도 마을 주민들의 회유처럼 들릴 때가 있었습니다. 선의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말에 동조하는 순간 제 안의 열정이라는 불씨가 꺼질 것 같았습니다. 소연이 광기의 한복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듯 저도 키보드를 놓지 않기로 했습니다. 세상의 소음과 광기 앞에서도 자신만의 도덕적 나침반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스토아 철학이 가르치는 삶의 지혜이고 이 영화가 스크린 너머로 건네는 숭고한 가르침입니다.

결론 : 스크린 밖 우리의 일상에 숨어있는 삼악도

영화 삼악도는 100분간의 숨 막히는 몰입이 끝난 후에도 짙은 여운과 찝찝함을 남깁니다. 극장을 나서며 우리는 묻게 됩니다. 과연 이 기괴한 광기는 스크린 속 외딴 마을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현대 사회 역시 가짜 뉴스와 확증 편향 그리고 맹목적인 진영 논리라는 또 다른 형태의 삼악도에 잠식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타인이 주입한 맹신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이라는 등불을 켜고 나만의 내면의 성채를 굳건히 지켜내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웰메이드 오컬트 영화가 오늘날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서늘하고도 철학적인 경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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