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 리뷰 : 사라지는 것들을 향한 스토아적 순례와 시네마라는 구원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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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AI 사용)

암전된 상영관 세속의 짐을 내려놓는 우리들의 성소

팬데믹과 디지털 매체의 범람 속에서 영화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점차 쇠퇴해가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는 바로 이 상실의 시대에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자 아름다운 러브레터입니다. 여든여덟의 노 영화인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위원장이 직접 캠코더를 들고 한국을 비롯해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곳곳의 낡은 극장과 세계적인 거장들을 찾아 나섭니다. 이 여정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섭니다.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될 예술과 공동체의 가치를 묻는 철학적인 순례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동네의 작은 예술영화관에서 보았습니다. 관객은 저를 포함해 열 명 남짓이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김동호 감독이 텅 빈 극장 좌석을 쓸쓸히 바라보는 장면이 나왔을 때 저는 제가 앉아 있는 이 반쯤 빈 상영관과 스크린 속 풍경이 겹쳐지는 묘한 경험을 했습니다. 저도 극장의 쇠퇴에 일조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은퇴 후 넷플릭스와 유튜브에 익숙해지면서 극장에 가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으니까요. 이 영화는 그런 저에게 극장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영화를 보는 곳이 아니라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습니다.

88세 신인 감독의 발걸음과 시네마의 풍경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부터 고레에다 히로카즈, 차이밍량, 뤽 베송에 이르기까지. 김동호 감독의 카메라 앞에는 세계 영화계를 이끄는 동지들이 모여앉아 영화관에 대한 각자의 뜨거운 기억을 고백합니다. 영화는 각국의 오래된 극장들과 독립예술영화관이 텅 빈 채 사라져 가는 쓸쓸한 풍경을 비추지만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영화인들의 굳건한 연대입니다.

저에게도 극장에 대한 깊은 기억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퇴근 후 동료들과 종로의 허름한 극장에 들어가 이중 상영 영화를 보던 시간. 빈약한 냉방 시설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그 몰입의 순간. 극장을 나오면 동료들과 포장마차에 앉아 영화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곤 했습니다. 그 시간들이 제 인생의 가장 풍요로운 순간이었음을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김동호 다큐멘터리, 부산국제영화제 역사, 사라지는 영화관을 다룬 영화에 관심 있는 관객이라면 자신만의 극장 기억이 소환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맹목적 의지의 피난처 : 쇼펜하우어의 순수한 인식의 주체

쇼펜하우어는 고통과 욕망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식처가 바로 예술이라고 보았습니다. 영화관의 불이 꺼지고 거대한 스크린이 빛을 발하는 순간 우리는 세속적인 짐과 이기적인 자아를 완전히 내려놓고 스크린 속 인물들의 삶에 깊이 공감하는 순수한 인식의 주체로 거듭납니다.

이 체험이 휴대폰으로 영화를 보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극장에서는 어둠 속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같은 장면에서 웃고 같은 장면에서 숨을 죽입니다. 이 공유된 감정의 체험은 혼자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거장들이 이구동성으로 예찬하는 영화관의 마법은 곧 타인의 고통과 기쁨을 나의 것처럼 느끼게 하는 쇼펜하우어적 동정심의 체험입니다. 김동호 감독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인간이 이기심을 초월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이 신성한 공감의 공간인 것입니다.

통제할 수 없는 시대의 변화와 스토아적 수호 

팬데믹이나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영화 산업의 변화는 한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외부의 운명입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좌절하기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도덕적 의무에 온전히 집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극장이 사라져 가는 위기 앞에서도 묵묵히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서는 88세 신인 감독의 모습은 가장 숭고한 스토아적 태도를 보여줍니다.

저 역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작은 결심을 했습니다. 한 달에 최소 한 번은 극장을 찾겠다고. 넷플릭스의 편리함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극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고유한 체험을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88세의 김동호 감독이 아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극장을 지키려 애쓰는데 편한 소파에 앉아 극장이 없어져서 아쉽다고만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요.

결론 : 영사기의 불빛은 결코 꺼지지 않는다

영화의 말미,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영화제가 열리는 상영관에 앉아 묵묵히 스크린을 바라보는 김동호 감독의 뒷모습은 먹먹한 울림을 남깁니다. 그것은 언제까지고 영화라는 예술을 수호하겠다는 거룩한 의지입니다.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에게 영화관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습니까? 모바일 화면의 편리함 속에서 우리가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돌아오는 주말에는 가까운 독립영화관이나 오래된 극장을 찾아 어둠 속에서 타인과 함께 숨죽여 스크린을 바라보는 그 마법 같은 실존의 순간을 다시금 경험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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