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인터스텔라(Interstellar) :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유일한 중력이다


인터스텔라(Interstellar):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유일한 '중력'이다


별을 바라보던 인류가 땅만 내려다보는 시대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들 사이의 우리 자리를 궁금해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고개 숙여 먼지 속의 내 자리를 걱정한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꿈을 잃고 생존에만 급급한 근미래의 지구에서 시작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웜홀과 상대성 이론이라는 가장 차가운 물리학 법칙 속에 가장 뜨거운 부성애를 녹여냈다. 1,000만 관객이 이 난해한 물리학 영화에 열광한 이유는 단순하다. 이것은 우주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결국 가족과 약속에 관한 이야기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는 이 영화가 어떻게 하드 SF의 냉철함과 휴먼 드라마의 뜨거움을 한 화면 안에 공존시켰는지 그리고 놀란 감독이 우주라는 캔버스 위에 그려낸 부성애의 궤적을 분석해 본다.

큐퍼의 딜레마 : 떠나는 것이 남는 것을 지키는 길

주인공 쿠퍼(매튜 맥커너히)는 전직 우주 조종사지만 현재는 옥수수 농부다. 그는 인류를 구하기 위해 사랑하는 딸 머피를 두고 우주로 떠나야 한다. 이 설정이 관객의 심장을 움켜쥐는 이유는 쿠퍼의 딜레마가 축소된 형태로 우리 모두의 삶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가족 곁을 떠나야 하는 모순.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고 떠나기 때문에 사랑이 아프다. 놀란 감독은 이 보편적인 감정을 우주적 스케일로 확장시킴으로써 일상의 슬픔에 숭고함의 무게를 부여한다.

영화는 잔인한 상대성 이론을 통해 시간의 비가역성을 보여준다. 물이 가득 찬 행성에서의 1시간이 지구의 7년과 같다는 설정.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쿠퍼가 23년치 쌓인 딸의 영상 메시지를 보며 오열하는 장면은 영화사상 가장 슬픈 명장면 중 하나다. 매튜 맥커너히는 이 장면에서 대사 없이 오직 표정만으로 23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감당해낸다. 어린아이였던 딸이 자신과 같은 나이의 성인이 되어 원망과 체념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영상 앞에서 그의 얼굴에 스치는 감정들은 말로는 도저히 포착할 수 없는 것들이다. 자녀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밖으로 나돌아야만 하는 우리 시대 모든 가장들의 슬픔이 그 눈물 속에 압축되어 있다.

하드 SF와 인문학의 만남 : 사랑의 양자역학

인터스텔라는 철저한 과학적 고증으로 블랙홀 가르강튀아를 시각화했다. 킵 손 교수의 자문을 받아 구현한 블랙홀의 이미지는 이후 실제 관측된 블랙홀 사진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대사는 물리학자가 아닌 과학자 브랜드(앤 해서웨이)의 입에서 나온다.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에요."

처음엔 비과학적인 감상으로 치부되던 이 말은 영화의 결말부인 5차원의 공간 테서랙트에서 증명된다. 쿠퍼가 시공간을 넘어 과거의 딸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었던 유일한 매개체는 중력도 전파도 아닌 딸을 향한 간절한 사랑이었다. 놀란 감독은 여기서 대담한 도박을 한다. 과학의 언어로 촘촘히 쌓아 올린 서사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감정이라는 비과학적 요소로 채운 것이다. 이 선택은 자칫하면 영화의 논리적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었지만 놀란은 관객이 이미 쿠퍼와 머피의 관계에 충분히 감정을 이입한 상태에서 이 반전을 제시함으로써 논리가 아닌 심장으로 납득하게 만든다. 차가운 우주 방정식을 푸는 열쇠가 결국 인간의 감정이라는 이 역설적인 결론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영화 내내 반복되는 딜런 토머스의 시는 이 영화의 주제 의식 그 자체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꺼져가는 빛에 분노하고, 분노하라." 멸망해가는 지구, 돌아올 기약 없는 우주, 그리고 늙어 죽어가는 육체 앞에서도 인간은 저항하고, 탐험하고, 끝내 길을 찾아낸다.

이 시가 영화 속에서 반복될 때마다 그 의미는 미묘하게 변주된다. 처음에는 인류의 생존 의지를 노래하는 웅장한 선언처럼 들리지만 영화가 깊어질수록 이 시는 한 아버지의 개인적인 맹세로 수렴한다. 쿠퍼가 블랙홀 속으로 몸을 던지는 순간 이 시는 더 이상 인류의 찬가가 아니다. 그것은 딸에게 반드시 돌아가겠다는 한 아버지의 처절한 기도다. 미지의 세계로 몸을 던지는 쿠퍼의 용기는 단순한 영웅심리가 아니다. 그것은 내 자식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겠다는 부모 세대의 처절한 헌신이자 책임감이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인터스텔라는 거대한 스펙터클로 눈을 즐겁게 하지만 극장을 나서는 관객의 가슴엔 가족이라는 두 글자를 남긴다. 한스 짐머의 파이프 오르간 선율이 가슴을 울리는 가운데 관객은 우주의 광활함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게 된다. 지금 당신은 땅의 먼지만 보고 있는가 아니면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는가. 삭막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호기심과 사랑이다. 먼 훗날 우리가 별이 되어 만나는 순간까지 사랑은 우리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중력이 되어줄 것이다.

시간 여행을 다룬 또 다른 명작, 인터스텔라 과학적 해석(링크) 글도 함께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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