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굿바이, 안성기: 우리들의 영원한 '국민 배우' 별이 되어 떠나다
[추모] 굿바이, 안성기: 우리들의 영원한 '국민 배우' 별이 되어 떠나다
한국 영화의 얼굴, 하늘의 별이 되다
2026년 1월 5일, 믿고 싶지 않은 비보가 전해졌다. 평생을 한국 영화와 함께해 온 '국민 배우' 안성기 님이 혈액암 투병 끝에 향년 74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났다.
1월 9일 엄수된 영결식에서 동료 영화인들과 팬들의 눈물 배웅을 받으며 그는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1957년 다섯 살의 나이로 데뷔해 무려 70년 가까이 스크린을 지켰던 그는 단순한 배우가 아니라 한국 영화의 역사 그 자체였다. 본 글에서는 故 안성기 배우가 남긴 160여 편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그가 우리에게 남긴 위로와 감동을 가슴 깊이 새겨보고자 한다.
시대를 대변한 페르소나 (1980년대)
고인의 연기가 위대했던 이유는 그가 맡은 배역이 곧 그 시대의 자화상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군사 정권의 검열과 억압 속에서도 그는 사회의 모순과 청춘의 아픔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 고래사냥(1984): 배창호 감독과 함께한 이 시기 그는 엘리트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밑바닥 인생을 사는 소시민으로 분했다. 특히 고래사냥의 민우가 보여준 자유를 향한 갈망은 당시 억눌려 있던 대중들에게 거대한 카타르시스를 선물했다. 그는 화려한 스타가 되기보다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진짜 배우의 길을 선택했다.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주역 (1990년대)
한국 영화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던 90년대에도 그는 언제나 중심에 있었다.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투캅스(1993):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에서 보여준 능청스러운 부패 형사 연기는 그가 코미디 장르에서도 독보적인 존재임을 증명했다. 박중훈 배우와의 완벽한 호흡은 이후 한국형 버디 무비의 교과서가 되었다. 안성기는 무거운 영화만 한다는 편견을 깨고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던 그의 넉넉한 미소가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마지막까지 현역이었던 참된 예술가 (2000년대~마지막)
중년에 접어든 이후에도 그는 안주하지 않았다. 주연을 고집하기보다 작품을 빛내는 조연을 자처했고 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라디오 스타(2006):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없어. 별은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영화 속 대사처럼 그는 평생을 동료와 후배들을 빛내주는 삶을 살았다. 한물간 매니저 박민수 역을 통해 보여준 따뜻한 인간미는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깊은 위로를 건넸다.
아들의 이름으로(2021) & 카시오페아(2022): 투병 중에도 촬영을 강행했던 최근작들에서 그는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웠다. 특히 알츠하이머에 걸린 딸을 돌보는 아버지(카시오페아)로서 보여준 절절한 눈빛 연기는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연기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결론: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안성기라는 이름 앞에는 언제나 국민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정작 본인은 늘 "나는 부족한 배우"라며 겸손해했다. 단 한 번의 스캔들도 없이 오직 연기와 인품으로 존경받았던 그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었다.
이제 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160여 편의 영화들은 영원히 스크린 안에서 살아 숨 쉴 것이다. 부디 고통 없는 그곳에서 그토록 사랑했던 영화들과 함께 편안히 영면하시기를 기도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