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라디오 스타(2006)
[영화 비평] 라디오 스타(2006): "별은 혼자 빛나지 않는다" 안성기가 남긴 가장 따뜻한 위로
비와 당신, 그리고 두 남자의 이야기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박중훈의 '비와 당신'. 이 노래가 수록된 영화 <라디오 스타>는 이준익 감독이 만든 가장 소박하지만, 가장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1988년 가수왕 출신이지만 지금은 철없는 사고뭉치로 전락한 록스타 '최곤(박중훈)'과, 그의 곁을 20년째 묵묵히 지키는 매니저 '박민수(안성기)'. 강원도 영월이라는 한적한 시골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들의 이야기는, 화려한 성공 신화가 아닌 '실패한 사람들의 재기'를 다루기에 더 큰 울림을 준다. 본 글에서는 故 안성기 배우가 연기한 '박민수'라는 캐릭터를 통해, 진정한 어른의 모습과 관계의 미학을 되짚어 본다.
13년 만의 재회: <투캅스> 콤비의 완벽한 앙상블
이 영화가 개봉 당시 화제를 모았던 이유는 1993년 <투캅스>로 한국 영화계를 휩쓸었던 안성기, 박중훈 콤비가 13년 만에 뭉쳤기 때문이다. <투캅스>에서 서로 속고 속이는 파트너였다면, <라디오 스타>에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부 같은 관계(매니저와 가수)로 돌아왔다.
박중훈이 여전히 철없고 자존심만 센 '아이' 같은 모습을 연기한다면, 안성기는 그런 그를 묵묵히 받아주고 뒷수습하는 '어머니'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김밥 한 줄을 먹더라도 최곤을 먼저 챙기고, 방송국 국장에게 고개를 숙이는 안성기의 모습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 그의 인품이 투영된 듯 자연스럽다. 두 배우의 깊어진 주름만큼이나 깊어진 호흡은, 이 영화를 단순한 코미디가 아닌 휴먼 드라마의 걸작으로 만들었다.
안성기의 명대사: "별은 혼자서 빛나는 게 아니야"
영화 후반부, 최곤의 재기를 위해 자신의 존재가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한 민수는 조용히 그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그가 남긴 대사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이자, 안성기라는 배우의 인생철학이다.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없어. 별은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이 대사는 안성기가 평생을 통해 보여준 태도와 일치한다. 그는 자신이 돋보이려 하기보다, 상대 배우를 빛나게 함으로써 작품 전체를 완성하는 배우였다. 극 중 박민수가 최곤을 위해 그림자가 되기를 자처했듯, 안성기는 한국 영화계의 수많은 후배들을 위해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었다. 그렇기에 스크린 속 박민수의 눈물은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다가와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아날로그 감성: 영월이라는 공간과 라디오
영화의 배경인 강원도 영월과 '라디오'라는 매체는 잊혀가는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한다.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TV와 달리, 오직 목소리와 사연으로 소통하는 라디오는 진심을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
다방 종업원(김-양), 철물점 주인, 록 밴드 등 영월의 소시민들이 라디오를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연대하는 모습은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정(情)'을 상기시킨다. 이준익 감독은 촌스러움을 세련되게 포장하려 하지 않고, 촌스러움 그 자체의 따뜻함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그 중심에 낡은 점퍼를 입고 낡은 우산을 쓴 안성기가 서 있다.
당신은 우리들의 영원한 '매니저'였습니다
영화의 엔딩, 다시 돌아온 박민수를 보며 환하게 웃는 최곤의 모습은 해피엔딩을 넘어선 안도감을 준다. "형이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최곤의 외침은, 아마도 우리 관객들이 안성기 배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라디오 스타>는 안성기 배우가 우리 곁에 어떤 존재였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다. 그는 우리 모두의 '박민수'였다. 우리가 힘들 때 묵묵히 곁을 지켜주었고,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위로를 건네주었다. 비 오는 날,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보며 그를 추억하고 싶다.
*"안성기, 박중훈 콤비의 전설이 시작된 1993년 작 **<투캅스> 리뷰(링크)*를 먼저 보시면, 두 남자의 우정이 얼마나 깊은지 더 잘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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