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늦은 때란 없습니다 다시 시작하세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포스터


시간이라는 거대한 강물

어느새 희끗해진 머리카락과 거울 속 늘어가는 주름을 보며 가끔은 서글퍼질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깨달았습니다. 저의 주름은 낡아가는 징표가 아니라 제가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들이 남긴 인생의 훈장이자 지혜의 나이테라는 것을요. 우리는 모두 늙어갑니다. 아기로 태어나 노인이 되어 죽음을 맞이하죠. 하지만 여기 정반대의 삶을 산 한 남자가 있습니다. 80세 노인의 몸으로 태어나 시간을 거슬러 갓난아기로 죽음을 맞이한 벤자민 버튼입니다.

지난번 어바웃 타임 리뷰에서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우리는 시간을 단 1초도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만약 젊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 행복할까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이라는 최고의 배우를 통해 풀어냅니다. 그리고 그 답은 우리의 예상과는 사뭇 다릅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두 시간

벤자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고 그가 사랑한 여인 데이지의 시간은 우리처럼 순리대로 흐릅니다. 두 사람의 시간은 딱 한 번 인생의 중간 지점에서 교차합니다. 벤자민이 젊어지며 데이지가 늙어가는 그 짧은 교차점에서만 두 사람은 비슷한 나이의 외모로 서로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 설정이 아름다우면서도 잔인한 이유는 만남의 순간이 곧 이별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두 사람의 외모는 점점 더 멀어집니다. 데이지가 중년을 지나 노년에 접어들 때 벤자민은 청년을 지나 소년이 되어가고 있으니까요.

영화는 이 찰나의 순간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역설합니다. 젊음은 영원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서로 다른 곳을 보고 걷더라도 결국 우리가 만나는 곳은 현재뿐임을 보여줍니다. 벤자민과 데이지의 사랑이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그것이 불가능한 사랑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모든 사랑이 본질적으로 유한하다는 진실을 시간의 역행이라는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가치 있는 것을 하는 데 늦었다는 건 없다

이 영화가 시니어들에게 최고의 명작인 이유는 바로 벤자민이 딸에게 남긴 편지 때문입니다. 그 내용은 지금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저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하는 말 같습니다.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너는 변할 수도, 그대로 머물 수도 있다. 규칙 같은 건 없으니까. 꿈을 이루는 데 시간 제한은 없단다."

우리는 가끔 이 나이에 무슨...이라며 포기합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엔 너무 늦었다고 꿈을 꾸기엔 너무 나이가 들었다고 스스로를 가둡니다. 하지만 벤자민은 말합니다. 80세의 외모를 가졌든 어린아이의 외모를 가졌든 내면의 열정을 따르는 데 적당한 시기란 없다고 말입니다. 벤자민은 노인의 몸으로 태어나 걷는 법을 배웠고 중년의 몸으로 사랑을 시작했고 청년의 몸으로 세상을 여행했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적절한 시기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이 적절한 시기였을 뿐입니다.

저 역시 이 나이에 블로그라는 낯선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눈은 침침하고 타자를 치는 손가락은 느릿하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고 기록하는 지금 제 가슴은 그 어느 청춘보다 뜨겁게 뛰고 있습니다. 벤자민이 말했듯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결코 없더군요.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아이가 된다

점점점 어려져서 결국 기억을 잃은 갓난아기가 된 벤자민 그리고 그를 품에 안은 할머니가 된 데이지. 이 마지막 장면은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노인이 되어 죽는 것이나 아기가 되어 죽는 것이나 결국 우리는 누군가의 보살핌 속에서 왔다가 누군가의 품에서 떠납니다. 데이지가 아기가 된 벤자민을 안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장면에서 사랑은 외모도, 나이도, 기억조차도 초월한다는 사실이 조용히 증명됩니다. 벤자민은 데이지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그녀의 품에서 편안하게 눈을 감습니다. 머리가 잊은 것을 심장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이 장면은 어떤 대사보다 웅변적으로 사랑의 본질을 말해줍니다.

당신의 시간은 지금 몇 시입니까?

지나간 젊음을 부러워하며 뒤를 돌아보기엔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햇살이 너무나 따스합니다. 벤자민은 시간을 거슬러 점점 어려졌지만 우리는 시간을 순행하며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겉모습은 변할지라도 우리의 영혼만큼은 날마다 새로워지길 소망합니다. 영화 속 시계 장인은 전쟁터에 나간 아들이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거꾸로 가는 시계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계를 거꾸로 돌려도 죽은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에 아름답습니다. 벤자민처럼 점점 젊어지는 기적은 없지만 대신 우리에겐 어제보다 더 지혜로워지는 오늘이 있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되기에 지금은 가장 완벽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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